장자의 사상사적 위치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유교와 불교와 도교가 정신적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교와 도교는 동양 사상사에서 서로 대칭을 이루는 양대산맥으로 꼽힙니다. 윤리와 실용을 강조하는 유교의 가르침을 '양'이라 한다면, 좀더 신비한 내면을 강조하는 도교의 가르침을 '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로 조화와 균형을 이상으로 삼는 동양인의 정신적 필요에 부응해 온 셈입니다.
이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도교라 하는 것은, 엄격하게 따져, '도가 사상'과 '도교 신앙'으로 양분할 수 있습니다. 도가 사상이 인간의 내면적 초월과 자유를 추구한 것이라면, 도교 신앙은 주로 육체의 장생불사를 우선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도가 사상의 근간은 노자와 장자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후대에 와서 그것을 흔히 '노장 사상'이라고도 합니다. 노자의 사상은 <도덕경>이라는 책에서, 장자의 사상은 <장자>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상가 장자
장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세기 전한 시대의 유명한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에 275자로 기록한 간략한 이야기 입니다. 그 기록을 보면 장자는 몽이라는 곳의 사람으로, 이름이 장주입니다. 몽은 현재 하남성 상구현 동북 어디쯤일 것이라 하는데, 장자가 살던 전국시대에는 송이라는 조그만 나라에 속하였습니다. 젊어서 칠원이라는 옻나무 밭에서 일했다는데, 그일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장자는 양의 혜왕이나 제의 선왕과 같은 때의 사람이라고 하므로, 서력 기원전 390년에서 359년 사이에 나서 300년에서 270년 사이에 죽었을 것이라 추측하는데 학자들은 보통 그 생존 연대를 대략 기원전 368~285년 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맹자(371~289)와 거의 같은 때 사람인 셈입니다. 그러나, 맹자의 책에 장자에 대한 언급이 없고, 장자의 책에도 맹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둘은 서로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때는 전국시대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극히 어지럽고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사상가가 나와 자기들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소위 '제자백가'의 시대 였습니다. 장자도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태어나 자신의 사상을 피력한 사상가 중의 하나입니다. 장자의 도가 사상이 중국 철학사에서 문학, 예술 등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당대에 와서 그것은 선불교를 꽃피우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선승들, 특히 9세기 임제야말로 장자의 진정한 계승자라 여겨질 정도입니다.
고전 <장자>
<장자>는 장자라는 사상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장자가 죽은 지 200년 뒤에 사마천이 쓴 <사기>를 보면, 그 당시 "10여 만자"로 된 <장자>라는 책이 있었다고 하고, 전한 말 유향의 기록을 인용한 <한서예문지>에는 모두 52편으로 구성한 <장자>라는 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기원후 4세기 노장 사상이 전성기를 맞은 당시 북송의 곽상(기원후 312년 사망)이라는 사람이 그 때까지 돌아다니던 여러 가지 사본들을 정리하여 65,000여자, 33편으로 줄여서 편집하고, 거기에다 자기 나름으로 주를 달았습니다. 이렇게 곽상이 편집한 <장자>가 바로 우리가 보는 <장자>라는 책입니다.
곽상은 <장자>를 33편으로 하고 이를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왜 이렇게 나누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중 내편 7편은 곽상이 편집하기 전부터 묶여 있었는데, 그것은 이 내편 7편을 대체적으로 장자 자신의 저술로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합니다. 물론 냉정하게 관찰하면, 내편 7편도 모두 장자 자신의 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일관한 내용이나 심오한 사상, 정연한 문장을 고려하여, 적어도 내편 7편의 기본적인 것은 장자 자신의 생각으로 보는데 별 무리가 없습니다. 내편 각 편의 제목들은 모두 <소요유>처럼 세 글자로 된 것이 특색입니다. 내편에 비해, 외편과 잡편은 거의 모두 장자의 후학들이나 그 사상에 공명한 사람들이 자기들 나름으로 계속 글을 지어서 일종의 '장자 시리즈'가 되어 나온 것이라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장자>와 노자<도덕경>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장자의 사상이 여러 분야에 관계가 있지만 "그 근본은 노자의 설에 귀일한다"고 하였습니다. 장자의 사상이 노자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궤를 같이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장자는 노자를 주석한 것"이라고 한 명나라의 고승 감산의 말이나 기타 여러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장자>가 단순히 노자를 주석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 것은 지나친 말입니다. 넓게 해석하면 이말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장자가 노자를 그대로 받아 주석이나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노자 철학과 장자 철학이 따로 발전해 오다가 기원전 2세기 경에 합쳐서 한 학파가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나온 <회남자>에 처음으로 '노장'이라고 합쳐서 한 철학 체계로 다루었습니다.
최근 그래함(A. C. Rraham)을 포함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과정에서 장자 사상에 노자 사상을 첨가했다고 보고,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장자를 '노장 철학'의 주축으로 보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합니다. 사실 <장자>내편에는 노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노자를 직접 인용하거나 그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전혀 없는바, 장자는 노자가 제기한 문제를 자신의 처지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한 생각입니다. 도를 포함하는 몇 가지 중심 사상에서 둘은 보는 눈이 서로 같았겠지만, 3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다음 새로운 역사적 배경에서 등장한 장자는 마땅히 자기 나름의 형식으로 접근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 사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기본적 차이점들은 무엇인지 몇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노자의 <도덕경>이 주로 간략한 어록이나 시나 아름다운 산문 형식인 데 반하여, <장자>는 주로 이야기 형식입니다. 노자가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닙니다." 하는 엄숙한 선언으로 <도덕경> 첫머리를 시작한 데 반해, 장자는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습니다." 하는 이야기로 운을 떼었습니다. 물론 <장자>도 문단 하나하나가 시적 형식으로 꾸며지지는 않았지만, <장자> 전체가 시적 상상력을 표현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튼 노자가 자상하면서 근엄한 철인의 풍모를 지녔다면, 장자는 투철한 눈매로, 때로는 크게 껄껄 웃고, 가끔은 험구도 불사하는 재기발랄한 야인의 모습을 지녔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노자의 <도덕경>은 어느 면에서 정치 지도자를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 참여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물론 장자도 제4편에서 궁극적으로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여기저기 사회에서 처신할 태도를 논의했지만, 장자의 일차적 관심은 무엇보다 개인이 내적으로 성장하고 깨닫기 위해 힘쓸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자가 도가적 '정치' 실현을 이상으로 삼았다면, 장자는 도가적 '삶'의 완성에 초점을 맟춘 셈입니다.
셋째, 노자가 도를 주로 생성 변화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궁극적인 귀착점이라고 강조한 데 반하여,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근원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냥 그 변화에 몸을 맡겨 함께 흐르거나 그대로 변하기를 더욱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덕경>은 주로 도의 '생'하는 측면을 말하였는데, <장자>는 도의 '화'하는 기능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넷째, 노자도 그 당시에 많이 알려진 경구나 속담을 가끔 인용하였지만 대체로 자기의 생각을 홀로 개진한 데 반하여, 장자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사상들, 특히 이론학파들과 부단히 대화하고 대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첨예하게 전개하였으며 곳곳에 풍자와 해학과 비유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장자>에서도 노자의 <도덕경>에서와 같이 인위적이고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모든 행동을 초극한 상태, 분별지, 소지, 차별지등 모든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넘어선 상태, 야심과 욕먕과 우월감등 일체의 자의식을 극복한 상태, 이런 빈 마음의 상태에서 도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신나는 삶, 힘있는 삶, 풍요한 삶, 활력이 넘치는 삶, 절대적인 자유의 삶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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