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루 살로메 그리고 바그너
니체를 언급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들이 루 살로메와 작곡가 바그너입니다. 이들 각각의 삶을 살펴본뒤 니체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루 살로메
루 살로메(Lou Salomé)는 루이스 폰 살로메(Louise von Salomé)로 태어난 러시아 출신의 작가, 철학자, 그리고 심리분석가입니다. 그녀는 1861년 2월 12일에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 2월 5일에 독일의 게티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로메는 자신의 시대에 지적 및 문화적인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프리드리히 니체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포함한 다양한 철학자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살로메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당시 여성에게는 흔치 않은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 신학,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언어에 능통하며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학문적인 탐구는 니체와 프로이트를 비롯한 당대 유명 철학자들과의 심도 깊은 철학적인 토론을 이끌었습니다. 살로메와 니체의 대화와 서신은 니체의 학문적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녀는 니체의 철학적인 생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적 활동 외에도, 살로메는 다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철학, 심리학, 여성주의,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책과 에세이를 저술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개인의 독립성, 자유, 성적 정체성, 인간의 존재 조건 등의 주제를 탐구했습니다.
살로메는 관계에 대한 관점과 개인의 자유와 자기실현에 대한 강조가 독창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전통적인 결혼 개념을 거부하고 개방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옹호했습니다. 그녀의 아이디어와 신념은 사회적인 관습에 도전하였으며 여성주의 운동에 기여하였습니다.
살로메는 생애 후반부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스승으로 삼아 심리분석가로 교육을 받았으며, 최초의 여성 심리분석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심리분석 개념을 자신의 작품에 통합하고 개인들에게 상담과 치료를 제공했습니다.
루 살로메의 유산은 그녀의 학문적 기여, 그녀가 당대 철학자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옹호한 데에 있습니다. 그녀는 사회적인 기대에 도전하고 철학, 문학, 심리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혁신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2. 바그너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는 1813년부터 1883년까지 살았던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입니다. 그는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오페라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그너의 작품은 그들의 대규모, 복잡한 하모니, 풍부한 편곡으로 특징지어집니다. 그는 음악, 드라마, 시를 결합하여 ‘종합 예술 작품(Gesamtkunstwerk)’ 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통합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오페라는 종종 신화적이고 역사적인 소재를 다루며, 사랑, 운명, 인간의 존재와 같은 주제를 탐구합니다.
바그너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니벨룽겐의 반지(Ring des Nibelungen)’입니다. 이 작품은 서로 연결된 네 개의 오페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작업에는 25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 작품은 권력, 탐욕, 구원에 관한 신화적인 이야기로, 오페라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바그너의 작곡 스타일은 매우 영향력이 있었으며, 클라우드 데부시나 아놀트 슈벤베르크와 같은 후기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특정 캐릭터나 아이디어와 관련된 반복적인 음악적 주제인 리트모티프의 사용을 통해 많은 발전을 예견했습니다.
음악적 기여 외에도 바그너는 그의 정치적 및 철학적 신념으로 인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는 강한 민족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글에서 반유대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바그너의 생애와 이념의 이러한 측면은 상당한 논쟁과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는 음악 세계에 대한 깊은 영향력을 감소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바그너의 오페라는 그들의 음악적인 힘과 드라마틱한 성격 때문에 여전히 연주되고 감탄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 남은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그의 아이디어와 혁신은 오늘날의 오페라와 음악 작곡의 세계를 여전히 형성하고 있습니다.
3. 니체와 루 살로메(Lou Salomé)의 관계
니체는 1882년에 38세이던 자신과 21세였던 루 살로메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들은 친한 우정을 형성하고, 격렬한 지적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살로메는 매우 지적이었고, 니체는 그녀의 지적 능력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종신친구로 여기며 철학적인 대화상과 평등한 파트너로서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지적 연결을 넘어서 로맨틱한 요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니체는 살로메에게 강한 감정을 품었고, 여러 차례 결혼 제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관계에 더 독립적이고 비전통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살로메는 이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그녀는 결혼이 자신의 지적 자유를 제한하고 개인적인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로맨틱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우정은 지속되었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철학적인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살로메는 니체에게 어려운 시기에 감정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위로와 이해를 줬습니다.
살로메의 니체의 철학적인 아이디어에 미치는 영향은 중요합니다. 그녀는 니체에게 권력, 성적 욕망, 그리고 힘의 의지와 같은 주제를 탐구하도록 격려했으며, 이는 그의 후기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살로메의 영향은 특히 니체의 저서인 ‘‘자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타나는데, 거기에서 살로메의 캐릭터는 지혜와 영감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결국 큰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루 살로메는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으며, 이는 그녀와 니체 사이에 긴장을 일으켰습니다. 니체는 살로메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으며, 그들의 우정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니체와 루 살로메의 관계는 친구, 연인, 지적 교류의 요소를 포함한 복잡한 관계였습니다. 살로메의 니체의 철학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영향과 그녀가 친구이자 영감의 근원으로서 한 역할은 니체의 삶과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4. 니체와 바그너와의 관계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과 그의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을 창조하는 비전에 극도로 감명받았습니다. 바그너의 아이디어는 니체의 예술의 변혁적인 힘과 예술이 인간의 영혼을 높일 수 있는 잠재력과 일치했습니다.
그들의 초기 우정 시기 동안, 니체는 바그너의 예술적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감탄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으며, 특히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칭송했습니다. 니체는 바그너를 문화적인 구원자로 보았으며, 그의 작품이 독일 문화를 부흥시키고 예술의 재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악화되었습니다. 니체는 바그너의 성격과 그의 예술 및 철학적 견해의 방향에 점점 환멸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니체는 바그너의 독일 민족주의 강조와 독일 인민의 찬양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주의적이고 반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니체는 바그너의 이념에서 멀어졌습니다.
니체와 바그너 사이의 최종적인 결별은 1880년대 초에 이루어졌습니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가 1892년 (총 4부)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은 바그너의 미학과 철학적 이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니체는 바그너의 영향을 거부하고 신의 죽음을 선포했으며, 이는 그들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니체는 바그너를 쇠퇴의 상징으로 보았으며, 바그너의 조작적이고 자기 과장적인 성향을 비난했습니다. 니체는 후기 저작에서 공개적으로 바그너를 비판하고 그를 공유한 예술적 및 철학적 이상을 배반하였다고 비난했습니다.
니체의 바그너에 대한 견해는 복잡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니체는 바그너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니체는 바그너가 그의 지적 발전에 미친 초기적 영향과 그들의 초기 우정의 깊은 영향을 인정했습니다.
니체와 바그너의 관계는 감탄과 지적 유대로 시작되었지만, 서서히 실망과 소외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의 서로 다른 예술적 및 철학적 비전과 니체의 성장하는 개인주의가 예전에 친밀한 유대를 분리시키게 되었습니다
니체는 바그너의 독일 민족주의 강조와 독일 국민의 찬양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다른 예술과 철학적인 비전, 그리고 니체의 성장하는 개인주의로 인해 그들 사이의 밀접한 유대감은 결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니체, 바그너, 그리고 루 살로메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고 변화하는 동적인 특징을 띠고 있습니다. 바그너는 니체의 초기 멘토였지만, 나중에 니체의 실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살로메는 니체의 지적 동반자 및 감정적인 지원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니체, 바그너, 그리고 살로메 사이의 관계는 상호 교차하고 서로 영향을 미치지만, 그들은 더 큰 틀 내에서 독립적인 별도의 동적관계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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